'내' 코드와의 이별

3 mins read

AI철학

오늘 회사에서 개발을 하면서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이유는 즉슨 오늘 단 한줄의 코드도 치지 않고 개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닳았을 때이다.

여러 기능을 만들고, 동시에 리팩토링을 진행하고, 웹 개발을 진행하며 모바일의 CI/CD를 구성하는 등 이전에는 하나에 몇 일, 몇 주씩 걸리던 일들을 한 순간에 이뤄내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소름이 돋았다. 내가 지금 “내 의사대로 움직이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었다. 마치 아주 오래 알고 지내던 무언가와 이별 직전에 던지는 마지막 확인 같았다.

나는 분명 결정을 하고 있었고, 무엇을 만들지, 어떤 구조로 갈지, 무엇을 버릴지까지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판단의 결과물은 더 이상 ‘내 손’에서 나오지 않았다.

AI는 내가 생각한 방향을 순식간에 코드로 만들어냈고, 나는 그 코드를 읽고, 고치고, 다시 방향을 제시했다. 손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일은 전보다 훨씬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예전의 개발은 명확했다. 코드를 치는 만큼, 제품이 만들어지는 만큼 나였다. 에러를 만나면 나의 안일함이었고, 구조가 어지러우면 나의 사고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AI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구현을 제안하고, 찾지 못했던 오류를 손쉽게 찾아낸다. 나는 더 이상 **‘작성자’가 아니라 ‘선택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어 보았다.

“이 코드가 내 코드인가?” 가 아니라 “이 선택이 내 선택인가?”

어쩌면 우리가 집착해왔던 ‘내 코드’라는 개념은 개발자의 본질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던 역할이었을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비교적 최근까지) 아래와 같은 것들로 실력을 판단했다. • 빨리 작성하는가 • 더 많은 개발적 지식이 있는가 (디자인 패턴, 아키텍처) • 함께 일할 수 있는 좋은 코드를 만드는가

하지만 AI 시대의 개발은 점점 이렇게 변하고 있다. • AI로 생성된 결과물 중 옳은 것을 고를 수 있는 분별력 • 이 코드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능력 • 선택이 불러올 파장을 파악하는 능력

이제는 손의 숙련도보다 사고의 정렬이 더 중요해진다.

현재 느끼는 감정은 ‘일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공포보다는 정체성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에 가까웠다.

나는 더 이상 “코드를 잘 치는 사람”으로 나를 설명할 수 없게 되었고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 이 기능은 정말 필요한가? • 이 구조는 누군가를 배려하고 있는가? • 이 결정의 책임을 내가 질 수 있는가?

그리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선택은, 정말 ‘내 의사’일까?

손을 내려놓는 대신 판단을 떠맡는 시대.

나는 아직 그 시대의 답을 모르지만, 적어도 이 질문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만은 기록하고 싶었다.

그 순간부터 불안의 결이 조금 달라졌다. 이건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의사와 관계로 만들어질 개발자라는 직업의 격변에 대한 불안이었다.

장폴 사르트르는 인간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선택의 결과이며, 그 선택으로 스스로를 정의한다고.

앞으로 중요한 것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이 된다.

AI가 코드를 작성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승인했다. 그 선택은 빠르고 합리적이었고,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다.

사르트르식으로 말하면, 그 순간 나는 이미 선택하고 있었다. 선택하지 않은 척하면서.